지금은 단종된 플런저 키보드 아이락스 K20 사용 후기 한번 적어봅니다. 요즘 그렇게 주력으로 쓰지는 않지만, 가끔씩 꺼내서 써 보곤 하는 키보드죠.

 

지금은 기계식 키보드가 많이 출시되어 멤브레인 키보드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대부분의 제품들이 멤브레인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는 특히 소음 때문에라도 멤브 키보드를 사용하게 되는데요, 사실 키감이 멤브 시트의 품질에 따라서 많이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고급형과 저가형의 키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키감이라는 영역은 쓰는 사람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듯합니다. 이걸 신경 쓰기 시작하는 마니아 정도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차이를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은 그저 입력 도구로만 생각하기 쉽죠.

 

저 역시 처음에는 그냥 번들로 컴퓨터 사면 주는 키보드에 익숙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키감에 눈 뜨면서 새로운 키보드를 늘려가는 재미에 이걸 취미 생활로 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플런저 키보드? 처음 듣는 데?

 

아이락스 K20은 그런 면에서는 뭔가 과도기적인 키보드입니다. 멤브라고 하기에는 좀 더 기계식스럽고, 또 기계식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멤브 타건감이 있기 때문이죠.

 

당연한 게 원래 속은 멤브 시트가 있는 멤브레인 키보드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접점을 누르는 방식을 기계식에서 가져온 구조물과 비슷한 플런저로 하게 되어 독특한 키감을 가지게 되었죠.

 

기계식과 달리 스프링이나 접점부 같은 금속 부위가 없으며 이를 대신 해서 플라스틱 구조물인 플런저가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플런저와 비슷한 방식을 사용하는 게 로지텍의 로머 G 스위치가 들어간 제품입니다.

 

로머 G 스위치가 들어간 G613의 키캡을 뽑아 보면 플런저와 비슷한 플라스틱 구조물이 있습니다. 대신에 로머 G 스위치 방식에는 멤브 시트가 들어있지는 않습니다. 일반 기계식처럼 회로 기판에 접점이 붙어서 키가 눌리게 되죠.

 

빨간 테두리의 디자인 품평

 

처음 이 제품의 마케팅 포인트는 무겁다는 것이었습니다. 2013년에 처음 출시될 당시만 해도 이런 종류의 제품은 없었기 때문에 무척 화제가 되기도 했었네요.

 

텐키리스, 고급 키캡에 사용되는 POM 소재의 플런저 구조물, 역시 고급 소재라고 할 수 있는 PBT 키캡, 1Kg대 무게, 게임을 위한 윈도우 키 락 기능 등이 특징이었습니다.

 

키보드 사각 면을 따라 빨간색 고무 테두리가 있는데요, 처음에는 이 디자인이 보기 싫어서 일부러 분해해서 테두리를 빼놓았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별로 이상하지 않네요. 끼고 빼는 게 쉬워서 도로 끼워 놓았습니다. 아마도 디자인적으로 특징을 주면서 게이밍용이라는 포인트를 주고 싶어서 그랬겠죠. 

 

스위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플런저 특유의 구조물은 녹색의 POM 소재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얼마 전에 리뷰했던 체리 G80-1865LYNKO-2 적축 키보드의 키캡이 POM 소재입니다. 

 

이 소재의 특징이라면 내충격성이나 내마모성이 높고 촉감이 뛰어난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키캡에 사용되고 있죠. 다만 요즘 PBT에 많이 하는 염료승화 방식 각인용으로는 가공 난이도가 높고 가격이 비싸서 사용하는 회사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키캡은 또 저가형 ABS가 아니라 PBT입니다. 그런데 보통 비싸게 판매되는 두꺼운 PBT가 아니라 얇은 일반 PBT 키캡입니다. 두께가 정말 얇습니다. 키캡을 끼고 빼면서 부러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일반적으로 PBT 소재를 사용한 키캡은 그래도 ABS보다는 두껍게 만드는데 이건 안 그렇네요. 

 

오래 사용하고 나니 번들거림도 ABS만큼은 아니지만 있습니다. 보통 PBT 키캡을 오래 사용했다고 이렇게 번들거림이 나오지는 않는데 이 제품 같은 경우는 정말 얇고 후가공에 돈을 덜 쓴 것 같습니다.

 

여기에 키캡 유격이 있습니다. 타건 할 때의 소음이 이 유격에서도 나오네요. Space 누를 때 철컥! 하는 거랑 키캡들에서 자갈자갈 소음이 생기는 게 조금 단점입니다.

 

폰트 인쇄는 레이저 방식이고 폰트가 요즘 많이 보는 저가형은 아니고 좀 특색 있습니다. 무슨 고딕체 같은 느낌이네요. 각인도 화이트 컬러로 아주 선명합니다. 밤에 라이트가 없는데도 잘 보일 정도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큰 단점이 있는데요, Enter키에 ROCK이라는 영문이 박혀 있습니다. 진짜 록큰롤 스피릿! 이런 의미인 건지 생뚱맞은 폰트로 새겨져 있네요. 저는 록 음악을 좋아해서 그러려니 할 수 있어도 그냥 게이머가 본다면 이게 왜 여기에? 이런 기분일 듯싶습니다. 원래 제품명이 '아이락스 ROCK 시리즈 K20'이어서 그런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텐키리스가 아닌 풀버전도 같이 나왔었는데 아이락스 K10입니다. 동일한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텐키만 추가된 버전입니다.

 

키캡 디자인도 차별화가 되어 있습니다. 아래쪽이 라운드가 되어 있습니다. 키캡을 하나 뽑아 보면 위, 좌우 쪽은 직선인데 아랫면만 곡선인 걸 알 수 있습니다. 폰트와 키캡 모양이 어우러져 뭔가 비주류 같아 보이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 취향에는 맞네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체리식 키보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키캡 놀이가 여기서도 가능합니다. 플런저가 십자형으로 생겨서 대부분의 키캡을 적용할 수 있죠. 기본 키캡도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지만, 컬러 등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바꿔서 개성 있게 꾸미는 게 가능합니다.  

 

그 밖의 전체적인 제품 완성도는 괜찮은 편입니다. 무게 덕분에 상당히 책상에 안정적으로 놓이고, 또 높낮이 조절 받침도 잘 달려 있습니다. 단, 높이 조절 받침대 끝에 고무는 바닥을 잘 잡아주지 못하네요.

 

상판의 플라스틱 마감은 약간 저급입니다. 저가 플라스틱 마감에서 볼 수 있는 flow 자국이 보이고 상하판 모두 비싸 보이지는 않습니다. 

 

LED 라이트가 들어오는 부분은 Space키와 오른쪽 방향키 상단의 3개 인디케이터입니다. 특이하게 Space키에 불이 들어오는데요, 여기에 i-rocks라는 제조사명이 붙어 있습니다. 라이트 컬러는 녹색입니다.

 

칭찬해 주고 싶은 부분 하나는 하판에 있습니다. 바로 케이블이 나오는 위치를 3가지로 조절할 수 있는 점입니다. 완전히 사이드로 뺄 수 있는 건 아니고 정중앙과 좌우 쪽으로 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은근히 편한 게 컴퓨터의 위치에 따라서 선을 옮겨주면 아무래도 유선의 걸리적거림을 줄일 수 있죠. 저가형 제품에서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쓰기 어려운데 잘했다고 봅니다. 사용 중 음료수 등을 흘렸을 때 빠져나갈 수 있는 배수홀도 준비되어 있네요.

 

플런저가 주는 특이함과 아쉬움 그 어디 사이

 

플런저 구조가 가지는 특징에 의해 짤깍거리는 플라스틱 구조물들이 움직이는 소음이 약간 있지만 무시할 수준입니다. 그냥 일반 멤브레인들이 가지는 짤깍거림 수준이고요 Space키, 다른 스테빌이 들어가는 키들은 움직일 때 조금 더 소음이 있습니다.

 

이게 키감에 어떤 특이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구매했던 건데 역시 그 예상이 맞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키감입니다.

 

멤브레인이 가지고 있는 말랑거림과 반발력, 그리고 기계식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 이런 게 뒤섞여서 처음 치는 사람은 이게 어떤 키보드인지 조금 고개를 갸웃할 정도의 느낌이죠.

 

키 스트로크는 약간 반쯤 들어가다 마는 기분입니다. 원래 기계식이면 청축은 걸림이 있고 쑥 들어가는 지점, 적축이면 그냥 쑥 들어가는 지점이 있어야 하죠.

 

하지만, 아이락스 K20은 그런 지점이 중간에 뿌연 막이 막혀 있는 것처럼 중간 지점에서 막힙니다. 그래서 경쾌하게 확확 치는 느낌이 부족하죠.

 

대신에 스트로크가 짧아져서 구름 타법에 유리합니다. 이게 스트로크가 짧아진 것은 중간에 있는 구조물 때문입니다. 그냥 멤브레인 키보드라면 키캡 자체가 바닥 면의 러버돔을 때려야 하기에 깊이 들어가지만, 이 제품은 아래쪽에 있는 러버돔을 녹색 플런저가 누르게 되어 있죠. 그래서 중간쯤 누르면 이미 키 입력이 끝납니다. 

 

마치 키캡에 링을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경쾌함이 부족하지만, 긴 타이핑에는 유리함이 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는 용도로 사용했네요.

 

키감만 보자면 오래 칠 때 조금 지겨움이 느껴지는 키감입니다. 기계식이나 멤브레인이 가지고 있는 완성도와는 다른 느낌이고, 그 때문에 키감도 익숙함이 없어서인지 이질감이 계속 느껴지더군요. 

 

어느 키보드이든 어느 정도 사용하다 보면 다른 키보드로 바꾸고 싶어 지는 시점이 생기는데 K20은 그 시점이 조금 빠른 편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나쁜 제품은 아니고, 지겨움이 빨라지는 제품이네요. 그렇게 다른 걸 쓰다 보면 또 찾아지고 하는 불량식품 같습니다.

 

추천 혹은 비추천?

 

이 제품을 추천 혹은 비추천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추천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플런저의 키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멤브레인 키보드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런 제품이 계속 나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쉽게도 플런저는 기계식 제품들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입지가 줄어들었습니다. 지금 다나와에서 플런저 키보드를 검색해 보면 30여 개가 전부입니다. 이 밖에 대부분은 기계식과 사무용 멤브레인들이 차지하고 있죠.

 

그나마도 텐키리스 플런저는 아예 없습니다. 아이락스의 K20이 거의 유일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만큼 시장성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계식은 기계식대로, 무접점은 무접점대로 각각의 개성 있는 키감이 있습니다. 이걸 어떤 게 좋고 나쁘다로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닌 듯싶네요. 

 

플런저는 키보드를 만드는 하나의 방식이기에 좀 더 발전시켜서 다양한 구색으로 남아 있었으면 합니다.  아이락스 K20에서 어느 정도 만족했기에 다음에 또 텐키리스로 플런저가 나오면 구매하려고 하다가 그만 후속작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네요.

 

이 제품을 소장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저와 비슷한 느낌으로 가지고 있을 겁니다. 데일리로 쓰려고 하면 좀 아쉬운 감이 있고, 창고에 넣어두자니 자꾸 생각나고, 그런 의미에서 괜찮은 제품입니다.

 

아마도 많이 팔리지 않았으니 후속작이 나오지 않았겠지만 키보드 잘 만드는 아이락스에서 이런 플런저가 또 나온다면 구매 의향은 200%입니다. 

 

이제는 너무 많이 사용되고 있는 기계식 스위치가 질리신 분, 조금은 독특하고 재미있는 키보드를 만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아이락스의 K20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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