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 보여 드릴 키보드는 BTC-5800입니다. 비티씨정보통신이라는 회사에서 제작한 제품으로, 많은 기업들에 납품되었던 키보드죠. 통통 튀는 탄력의 클래식 키보드라고 하겠습니다.

 

원래 2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키감이 죽어 버려서 버렸고 나머지 하나를 거의 새것처럼 보관하다가 꺼내 보니 태닝이 바로 일어나 있습니다.

 

태양을 보지 않더라도 태닝은 오래된 플라스틱의 숙명이군요. 제가 손을 댔던 부위만 이색 현상이 생겼습니다. 정말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제품인데 제 손 끝의 기름기가 원인인 듯싶습니다.

 

꽤 마음에 들었던거라 예전에 공동구매로 구매했었고, 보관도 깔끔하게 잘했는데 세월은 어쩔 수가 없네요. 구매할 당시에 박스는 무지 박스로 겉면에 그냥 KEYBOARD라고만 큼직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BTC-5800은 어떤 키보드?

 

비티씨정보통신이라는 회사는 자체 브랜드인 BTC로 키보드를 제조 판매하면서 삼성, LG, 삼보, 현주 등 당시 국내 컴퓨터 제조 기업에 번들 키보드를 납품하던 키보드 제조사입니다. 대만에도 BTV가 있는데 그 회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은 비티씨씨큐라는 회사로 변경되면서 일반 키보드는 거의 제조하지 않는 듯하네요. 홈페이지에 가서 보니 포스용이나 산업용 키보드, 키오스크 등을 주문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에 리뷰했던 미니 키보드의 명기 BTC-6100을 만들기도 했죠. BTC-5800은 마니아들의 수집품 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BTC 5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BTC 5100C, 5109, 5139, 5140, 5149, 5530kp 등등이 있었고 5800은 따로 현대멀티캡 컴퓨터에 납품되기도 했습니다. 5800과 동일한 모양을 하고 삼성전자와 뉴텍에는 5900으로 OEM 납품되기도 했었죠.

 

삼성전자에 납품된 모델은 투톤이라서 지금 봐도 정말 예쁩니다. BTC 5800과 5900은 이름만 다르고 같은 제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현재 제가 보유하고 있는 제품은 제조일자가 2001년 11월입니다. 지금부터 무려 20년 전 키보드네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키감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사용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러버돔 경화 이런 게 전혀 없어 보이네요. 

 

전형적인 멤브레인 키감인데 엄청나게 통통 튀는 맛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키압이 높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거의 구름 타법 비슷하게 가능한 걸로 봐서는 키압보다는 러버돔이 특이해서 이런 키압과 키감이 생기지 않나 싶습니다.

 

한 번 쳐 보면 정말 어떻게 이런 키감일 수 있지? 하고 고개가 갸웃해지는 뭔가 독특한 키감이 느껴집니다. 보통 일반적인 멤브레인 키보드들이 쑥 들어가면서 확 퍼져 버리는 아주 저급의 제품들이 많은데, 이건 그런 제품들과는 결을 달리 합니다.

 

칠 때 멤브레인 특유의 키캡 소음은 있지만 흔들림이 거의 없어서 아주 안정적인 타이핑이 가능합니다. 멤브레인 좋아하는 분이라면 안고 죽겠다는 심정으로 꼭 보관하고 싶어 지는 그런 키보드 중 하나죠.

 

절제된 클래식 키보드의 디자인

 

전체적인 디자인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아우르는 클래식 디자인 그 자체입니다. 이 제품은 자체 유통 상품이어서 그런지 상판에 아무런 프린트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보통 BTC라고도 적혀 있을 법한데 그런 회사 로고 같은 게 전혀 없네요.

 

기본 106키로 되어 있고 윈도 키의 로고는 무려 윈도 98 또는 윈도 2000으로 보이는 로고가 박혀 있습니다. 제조 연도가 2000년이다 보니 이때쯤 나온 윈도가 박힌 모양이네요.

 

키 배열은 아주 표준적인 키배열인데 Space 키 좌우로 촘촘하게 한국형 키들이 놓여 있습니다. 왼쪽에 4개, 오른쪽에 5개나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Space 키의 길이는 별로 안 줄어든 건 대단하네요.

 

잘 보면 하단 열의 키캡 크기가 작은 것들이 있는데 이걸로 길이가 줄어드는 것을 방지했나 봅니다. 가장 일반적인 한국형 키보드 배열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다른 제조사들도 이런 건 좀 배우면 좋을 텐데 말이죠. 

 

오른쪽 숫자 키패드 위에는 인디케이터가 있습니다. 조금 촌스러운 녹색 불이 들어오는데 LED가 아닙니다. 일반 발광 다이오드 방식이네요. Num, Caps, Scroll 이렇게 표시가 됩니다.

 

키보드 자체의 무게는 크기에 비해서 무겁지 않은 편이어서 아쉽습니다. 조금 묵직하면 좋을 텐데 하판을 들여다보면 갈빗살이 드러나 보이게 만들어 플라스틱이 적게 들어간 게 눈에 보이죠.

 

이런 방식은 삼성전자의 DT35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하판이 똑같은 구조를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어차피 멤브레인 키보드에는 특별히 공간을 차지할 구조물이 없으므로 공간을 줄이고 플라스틱도 아끼려고 이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군요.

 

하판에는 큼직한 높이 조절 받침대가 있으며 끝에 고무 처리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반 고무지지대는 전면에만 좌우로 2개가 박혀 있네요. 그나마 딱딱한 고무여서 미끄럼 방지 효과가 크지 않습니다.

 

키스킨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 폴리우레탄 재질이다 보니 많이 변색되고 낡아서 거의 쓸모가 없어져 버렸네요. 박스 안에 들어는 있는 데 사용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세월이 원망스럽네요. 

 

측면을 보면 원래 손목 받침대를 달 수 있게 디자인 된 구멍이 보이는데 손목 받침대가 제공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OEM 제품들 중에서 삼성전자 같은 곳에 납품하던 건 손목 받침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같은 하우징을 사용하다 보니 없어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매력적인 특유의 키감

 

이 제품은 멤브레인의 특징인 러버돔을 누른다는 표현보다는 터치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특이합니다. 보통 멤브레인은 키캡이 쑥 들어가서 아래쪽 접점부를 눌러준다는 느낌이 들게 마련이죠.

 

심한 제품들은 바닥면을 완전히 터치해야 해서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손가락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BTC-5800은 가볍게 터치하듯이 눌러주면서 구름 타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게 키압이 가볍다는 의미는 아니고 누를 때 스트로크를 다 쓰지 않고 위쪽만 쳐 준다는 기분으로 쳐도 충분히 입력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강한 키압의 무접점 방식 키보드를 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키캡을 열어 보면 그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은 키캡의 중앙부가 네모 형태로 되어 있지만, 이 제품은 동그란 원기둥이 러버돔을 직접 누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원기둥 주위로 정확하게 키 입력이 가능하도록 가이드 구조물이 네 면에 모두 있죠. 이런 키캡 구조 덕분에 키캡의 중앙이 아닌 다른 주변부를 눌러도 정확한 입력이 됩니다.

 

체리사의 MPOS 키보드가 이런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키캡을 열어 보면 원기둥이 키캡에 달려 있어서 정확하고 부드러운 키 입력이 가능하죠.

 

이건 사용자 입장에서는 타이핑할 때 아주 도움이 되는 키캡 디자인이라고 하겠네요. 중앙부를 정확히 누를 수 있어서 키캡 흔들림이 적고 안정적인 키감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멤브레인은 두 가지 성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말 키감이 푸석거려서 누르고 싶지 않은 정도로 엉망인 멤브 시트가 있는가 하면, 이 제품처럼 고급진 타건감을 느낄 수 있는 고급 멤브 시트를 적용한 제품도 있습니다.

 

제가 고급 멤브 시트라고 표현한 건 정말 이 제품에 그런 고가의 러버 시트가 사용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손가락이 느끼는 부분은 고급진 러버 시트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상당히 오래 전에 출시가 되었고, 그때 당시의 자료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검색을 해 봐도 이 제품과 관련한 내용들을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고전 키보드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제품들의 데이터가 없다는 게 키보드 마니아로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부터라도 기록을 남겨 보고 싶기는 한데 뭔가 전문적이지 않아서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런 명품 키보드, 다시 꼭 발매해 주세요

 

요즘은 기계식 아니면 무접점, 이렇게 양분화가 되어 있어 멤브레인의 입지가 좁아진 게 사실입니다. 아무리 저가라고 해도 무한동시입력이 가능하고 기능적으로도 충분한 베이스 제품들이 많습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개발비를 들여가면서까지 굳이 기술적으로나 품질적으로 더 진보한 멤브레인 제품을 만들 필요가 없겠죠. 

 

키보드 마니아 입장은 조금 다른데, 지구상에 나와 있는 모든 키보드를 만지고 싶은 게 본심입니다. 과거가 되었든 현재가 되었든 아니면 미래가 되었든 계속해서 존재하는 새로운 키보드에 손을 얹어보고 싶어 지죠.

 

지금 키보드 회사들은 유통사가 국내라고 해도 대부분 중국에서 만드는 것들입니다. 국내 생산 공장이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키보드 생산 라인이 다 중국으로 넘어가 있다고 볼 수 있죠. 

 

이 제품도 제조자는 비티씨정보통신인데 실제 생산은 중국 심천 공장에서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래 경기도 화성에도 생산 공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양으로 옮겼다고 하네요.

 

멤브레인 애용자로서 제조사에 하고 싶은 말은 이런 멤브레인 명품 키보드를 계속 만들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사실 멤브레인과 기계식, 그리고 무접점은 서로 다른 방식의 제조에 따른 키감 차이를 보여줍니다.

 

어떤 게 더 낫고 어떤 게 더 못하다는 건 일차원적인 분류이고, 키감은 사용자에 따라서 제각각으로 느끼는 영역이기 때문에 모든 키보드가 다 다른 키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멤브레인도 더 비싼 가격의 좋은 제품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죠. 멤브레인이라고 꼭 쌀 필요는 없습니다. 더 좋은 품질의 러버 시트를 적용하고 더 고품질 키캡을 사용해서 고급화를 한다면 또 다른 시장을 만들 수 있겠죠.

 

결론은 BTC-5800이 좋은 키보드라는 것, 그리고 이런 키보드를 앞으로도 더 만나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제가 만드는 게 아니다 보니 이런 제품을 기획하는 제조사가 다양성 차원에서 이런 제품을 계속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욕심을 내 봅니다. 

 

지금 벌써 태닝이 되어 버리는데 점점 시간이 가면서 고장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폐기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제 선반 위에서 가끔 책상 위로 내려오는 키보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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